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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익은 얼굴 새로운 발견12세 소년이 지나온 역사는 이제 흐르는 바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전영선 | 승인 2019.01.15 09:59


"자유대한민국지키기 국민운동본부" 권성주 수석부회장.

먼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의 지독했던 일생의 아픔을 다루기엔 어떤 사건을 접하고 보도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세상에 공표하는 순간을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사람을 알고 공감 할 수 있으리라~

때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함경남도 도청소재지가 있던 도시에 살던 9남매의 가장 권병두, 함산지에 기록되기를, 1905년에 일제의 관치상업에 반기를 들며 "함흥상업회"를 조직하고 함흥상업학교 설립, 북조선 조선인을 위한 상업은행설립, 매년 300명의 선발된 학생들을 상대로 조선민족사관을 갖춘 일군들을 배출했다.

또한 함흥상업학교의 부설 보육원을 설립하여 광복시까지 고아 47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러던 권병두는 3.1운동을 주도하며 항일운동의 중심으로 활동, 일경에 체포되어 희생된다.

그의 업적 중 항일투쟁사에서 문필가들의 저항본부였던 "신간회"는 민족주의와 좌우익사상이 맞서게 되자 항일운동의 민족적 총역량을 결집하는데 함흥상업회는 신간회를 지원하며 1929년 함흥에서 "신간회" 설립하고 서울과 연결하며 전국에 지부를 두었다. 권병두의 애국운동은 물산장려운동도 포함된다.

권병두는 그 동안 대한민국 공훈전사자료에 세번이나 거론되지만 이북에서 피난 온 유적들의 자료취합에 한계가 있어 현재까지 유공자로 추서되지 않고 있었다.

항일운동을 이유로 일본관원게에 체포되어 처형

권병두, 일제시대 함흥상업회, 신간회활동, 보육원설립, 물산장려운동을 지휘하던 그는 우리가 알만한 "자유대한민국지키기 국민운동본부" 권성주수석부회장의 부친이다.

큰형님 권봉주, 그는 일본유학 후 부친의 친일경력을 문제삼은 일경이 강제로 징집, 말레지아 등으로 징용 갔으나 8.15해방과 더불어 서울에 왔으며 부모님의 권유로 장남이라서 고향을 지키며 책방(서점)을 운영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많은 지식인들과 교제하게 된다. 그는 공산당에 저항하는 12인의 백의민국당을 조직하고 6.25전쟁과 동시에 피아노속에 몰래 무전기를 설치하여 공산당의 상황을 남한으로 송출하다 걸려 공개처형되었다. 피난길에 당한 형님의 장례식엔 태극기가 없어 당시 신혼 6개월된 신부(형수)의 빨간립스틱으로 태극기를 그려 시신을 덮어 장례를 가매장으로 치루고 가족들은 모두 남한으로 피난길에 오른다.

보훈전사자료관에서 함산지, 함흥시지.

서울 효창공원의 김구선생 동상뒤편에 제이북출신 유가족탑에 180인의 기념탑이 있으며 그 곳에 "권봉주"란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매년 10월15일 이북출신인들은 함께 모여 그들을 추모한다.

셋째형님 권형주, 그는 수재였으나 인민군에게 불손가정출신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가 생사불명이다.

둘째형님 권득주, 함산지와 함흥시지에 기록되기를 오스트리아 짤스부룩 세계호텔학교를 동양인으로서 학교역사상 최고로 인정 받으면서 졸업하고 대한민국호텔문화와 호텔경영의 선진화를 이룩한 사람이 "권득주"며 조선반도호텔, 워커힐호텔 총지배인이었고 현재 하와이에 거주중이다.

함경남도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권성주" 그가 만난 역사적 비극의 가족관계는 대한민국 독립과 탄생의 격동기를 지나오며 행복했던 기억은 북한에서 폐족으로 몰리며 당시 상황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다.

충격을 이겨내고 피난민으로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열심히 노력하여 서울 양정고, 고대경영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런 배경이 있었음에도 단 한번도 가족의 애사를 측근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작년 하늘이 맑게 개인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날....

함산지, 함흥시지 등의 자료를 가지고 신문사에서 만나 일생을 불과 몇 시간만에 간략히 풀어내면서 아버님의 묻혀진 명예회복과, 형님의 애국심도 영전에 확인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역사는 몇몇 새로 찾은 기록들과 자료들을 보충하고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 유공자로 등록 할 서류와 증거를 모두 취합하여 2018년 등록하고 보충서류를 요청하여 접수했으며 지난달 보훈처에서는 보충자료를 확인하였다.

일제의 점령과 6.25전쟁의 두 역사를 넘나드는 어느 한 개인의 일생을 짧은 글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모른다.

당시 비극으로 북에서 폐족으로 몰려 고향을 등지고 자유를 찾은 피난길의 12세 권성주는 지나온 역사에서 흐르는 바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당신 스스로 감았던 눈과 가슴을 열고 과거를 복기하며 "먼저 보내드린 아버님과 형님들의 명예회복이 증명되는 것으로 한을 풀겠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호흡하고 있는 애국동지의 상처난 가슴을 위로해 줄 이유는 충분하다.

3.1절 전이나 늦어도 8.15광복절이면 발표된다는 보훈처의 유공자추서를 기다리며 자유대한지키기 국민운동본부 "권성주수석부회장"의 가족사에 경의를 표하며 대한민국정부의 정당한 결정을 기다린다.

전영선  chunjiin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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