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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동포사회는 ‘이민휘’가 자랑스럽다’국민훈장 무궁화장과 5-16민족상 등 다채로운 수상이어 자랑스러운 동국인 ‘대상’ 까지--
썬데이한국 공유 | 승인 2019.01.15 10:15
2018년 자랑스러운 동국인상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중앙-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이민휘회장.

이민휘미주동포후원재단 명예이사장(이하 회장)이 2018 자랑스러운 동국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자랑스러운 동국인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술 등의 각 부문에서 한해(2018년)를 빛낸 ‘동국인’ 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최재성더불어 민주당국회의원 (정치), 민홍기 유엔아이 대표이사(경제), 오정석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회장(사회), 정승덕 동국대교수(학술),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문화부문)이 괄호( )부문에서 각각 자랑스러운 동국인 상을 수상했다. 이들 가운데 영예의 ‘대상’을 이민휘회장이 수상한 것이다.

이민휘회장은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동백장을 비롯 제47회 5-16민족상, 체육훈장 거상장, 호국영웅기장 등을 수여받은바 있다. 이 가운데 국민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서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5-16 민족상은 조국의 근대화에 밑거름이 돼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숨은 일꾼과 집단을 찾아서 수여하는 상으로 매년 5월에 시상한다. 거상장은 체육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체육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되는 훈장이고 호국영웅기장은 여느 훈장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장인데 이는 국가흥망성쇠의 찰나인 6-25 전쟁 때에 참여,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참전군인에 한해 수여하는  정말 특별한 상이다.

오늘의 이민휘 회장이 있기까지 그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샌프란시스코한인회장--한인사회봉사 활동 본격화
소니아 석 회장과 함께 LA한인회관건립기금 마련

이민휘회장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곳은 샌프란시스코. 그때가 1956년 8월, 유학생 신분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족 이민을 한 것은 10년 뒤인 1969년 가을, 그의 나이 서른일곱, 끓는 피를 감당하지 못 할 때다. 그때는 누구나가 그랬듯이 그 역시 고달픈 이민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2년 후인 1971년, 그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샌프란시스코한인회 제7대와 9대회장 선거에 출마,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그의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이 본격화 된다.

1974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소니아 석 회장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 로스앤젤레스 한인회관 (981 S. Western Ave.) 매입을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냈다. 1976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한인회 회장 (1980/제12대) 등을 비롯 재미동포올림픽후원회 회장(1986~88), 재미대한체육회장(1990~93), 미주한인회장 총연합회 총회장(1995~99), 미주동포후원재단 초대이사장 (2006~현재 명예이사장) 등 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단체를 17차례나 이끌어 왔다.

80대 중반을 넘긴 고령에도 LA-한국 동분서주
투철한 봉사정신과 리더십은 가문의 내력 

80대 중반을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재 맡고 있는 미주동포후원재단 관련 행사 - <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 등을 위해 1년에 수차례 미국과 한국을 왕래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민휘회장의 투철한 봉사정신과 책임감, 타고난 보스 기질과 리더십은  우리사회의 든든한 맏형으로 자리 매김한지 이미 오래다.

(왼쪽) 제4회 세계한인의 날-‘자랑스런 세계한인’으로 선정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한 이민휘회장. (오른쪽) 2012년도 제47회 5-16민족상을 수상한 이민휘회장.

이민휘회장의 이런 내력은 어디서 태동했을까. 이회장의 선친인 이규갑목사는  상해 임시정부 창립 발기인을 지낸  독립운동가였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재무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국회의원도 지냈다. 1970년 작고 당시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지기도 했다. 또 장인인 이갑성옹은 기미 독립선언 33인 가운데 한명이었다. 이회장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후손으로 선친과 장인이 독립투사였다는 사실과 ‘물질과 개인의 이익에 집착 하지 말라’는 가훈을 항상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아왔다.

이회장의 인생--휘파람 속에 흩날려 버린 ‘대합실 인생’
온갖 중상모략에도 좌절하지 않고 꼿꼿하게 일어서

최재웅 미주한국일보 전 편집국장은 이민휘의 일대기 <외길> (2013년 4월발행)에서 이민휘회장의 인생을 “휘파람 속에 흩날려버린 ‘대합실 인생’이다. 풀무처럼 단내를 풍기며 ‘비상’과 ‘추락’을 거듭해 온 ‘이민휘’, 50년대 한국대학가를 ‘주먹’으로 휩쓸었던 ‘학사 어깨’, 한밤중에 서울시내에서 기관총을 난사했던 태권도 6단의 열혈아이자, 주먹 보스였던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이 시대의 협객이고 풍운아이다. 미국 땅에 코리아 드림을 심고 가꾸려던 ‘이민휘’, 그러나 그는 ‘김대중 연설 방해 사건’ ‘한인회 선거 파동’ ‘외화밀반출 사건’ ‘코리안 갱 커넥션 설’ 등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온갖 중상모략, 공갈협박, 때로는 사생활까지 유린당하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꼿꼿하게 일어섰다. ‘이민휘’란 사람은 자기 주머니 속에 모범답안지를 지니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정기용 미주 워싱턴 소재 한민신보 발행인은 “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일관해 온 선친(이규갑목사)과 빙장(이갑성옹) 등을 배경으로 한 이형(이민휘)의 가족적 영향 때문인가, 정숙하기로 소문난 부인 이봉희 여사의 내조 때문일까. 평소 억울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태도를 보이는 남자다운 매력에 (이상 ‘외길’)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르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부인 이봉희여사 “남편의 봉사는 마음속에서 우러난 것”
“중상모략--남의 구설에 울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민휘회장의 부인 이봉희여사는 “ 제가 알기로는 남편은 정치적인 야심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자라 온 환경이 오직 ’애족애국정신’ 이었기 때문에 한인사회에서 일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헌신적인 봉사정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모략과 중상으로 남의 구설에 오르내릴 경우 울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애들이 밖에서 돌아오자 하는 말이 있었다. < 왜 아빠는 집안일을 돌보시지 않고 어머니만 고생시켜요 ? 왜 어머니는 남의 어머니처럼 호강하면서 살지 못해요. > 저는 그런 아이들에게 아빠가 하시는 일은  결코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란다. 너희가 크면 아빠가 얼마나 성실하게 사셨는지 반드시 이해 할 날이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남길 아빠의 값진 유산은 간절한 나라사랑, 겨레사랑을 위해 몸 바친 아빠의 성실한 삶뿐이다. ”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 <외길> 말미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아내의 입장에서>의 글 가운데 옮김]

“나 딴에는 사심 없이--보람과 아쉬움이 교차”
한 가지 큰 아쉬움은 커뮤니티센터건립 실현치 못한 것

이민휘회장은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다보면 우선은 쉽고,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유혹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훨씬 더 진취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재미 동포사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했는가. 딴에는 사심 없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 한다. 사회봉사는 무슨 명예나 보답을 바라서는 안 된다. 진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 신명을 쏟아 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서 했을 뿐이다. 나는 성인이 아니다. 그래서 적잖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 소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내 여생도 이제껏 내가 살아 온 것처럼 소신껏 살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 한 가지 큰 아쉬움이 있다면 한미동포재단의 분규로 인해 한인커뮤니티센터 건립의 꿈을 실현 시키지 못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민휘회장의 가족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사진 아래 중앙이 이봉희여사. 좌우가 며느리, 위는 두 아들과 손자.

이민휘회장은 배재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퇴학,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미국 산호세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부인 이봉희 여사와의 사이에 일영(사이먼)과 원영(필립) 2남을 두었다. 두 아들은 할리우드에서 액션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대표적인 출연 작품은 ‘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차남  필립씨는 ‘더 베스트 오브 베스트’ 1~4 편 까지 주연을 맡았었고 최근에는 영화 (UNDERDOG KIDS) 각본 및 제작자로 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민휘회장은 장남과 며느리(현주/Cindy)사이의 손자 종훈(KURT), 종성(KANE)-2명, 차남과 며느리(미선/Amy) 사이의 손자 종인(SEAN) 등 모두 3명의 손자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썬데이한국 공유  chunjiin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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