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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철학을 성숙시킨 감옥생활변화를 두려워하는 조선의 개혁을 위한 정신운동
제임스 한 | 승인 2016.11.06 02:50

“독립정신(獨立精神)” 이 책은 그의 감옥생활 말기1904년 2월19일에 최후 수정해서 석방될 때까지 34장이 완성되었다. 후에 그 당시 국민들의 정치적 바이블이라 할수 있는 가치 있는 책이 되었다.

유성준의 형 유길준은 노일전쟁(露日戰爭)이 시작되기 전에 정치적인 변동에 의해 관직에 돌아 왔으나 정부가 일본의 강력한 간섭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민족정신을 앙양하는 차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판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승만이 옥중에 있던 1901년 서울에 처음으로 나타난 서양인 측량기사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왼쪽), 1899년 제물포에서 노량진간 증기 기관차에 탑승하려는 시민들의 모습.

그래서 <독립정신>의 원고는 감옥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박용만이 일본 세 관리(稅關吏)의 검문을 피하기 위해 가방 밑바닦에 숨겨 국외(國外)로 운반하였다.

초대 주한 미국공사 부인 로즈 푸트가 가마를 타고 궁궐로 가는 모습(왼쪽). 프트공사가 Bob이라 부르는 미국공사관 한국사동.

훗날 이승만의 의형제(義兄弟)가 되었고 이 책을 출판하는데 주동이 된 박용만(朴容萬)은 이 책을 간행하기 까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람이 말하되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했으니 만일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비록 나 라는 망하였어도 그 나라 백성들의 독립정신만 완전하면 결코 아주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승만은 무술년 (戊戌年)정변으로  투옥된지  6년째고 본인은 감금을 면한지 수삭(數朔) 이다. 이승만은 이 글을 써서 옥중의 동지인 정순만(鄭淳晩) 신흥우(申興雨) 이동녕(李東寧) 제 군에게  보이고 다시 나에게 비평하기를 청하므로 나는 감히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직 노선배(老先輩)인 이상재(李商在)선생에게 부탁하여 비평을 듣고 다시 교정을 받았다”.

“본인이 힘을 않썼는지는 몰라도 출판하려 한지가 오래 되었으나 동분서주(東奔西走) 하였어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것을 미국까지 숨겨와서 하루라도 빨리 출판하려 했으나 방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금조달이 않되어 할수 없이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마침내 보배로운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힘을 합하여 1년의 시간이 지나 이 책을 출판하나… 이 것이 너무 늦게나와 그 동안 시세(時勢)의 변동과 형편의 변화로  읽는사람들이 흥미를 두려워하는 바라…. 어느 사람이든지 이 책을 읽으면 저자의 뜻을 짐작하겠거니와 또 응당 독립정신을 갖는 사람이 되어 장차 한국에 유조(有助)한 인재가 될 줄 믿는다….” 

1900년초 미국 뉴욕헤럴드 신문사에서 신문이 발행되는 모습과 같은시기 발달하고 있는 미국의 기계 산업의 모습.

한편 저자인 이승만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있다.

“옥중에 지루한 세월이 어언 5년 세월이 되니 천금광음(千金光陰)을 허송하기 애석하여 내외국 친구들이 때로 빌려 주는 각색 서책을 잠심하여 고초와 근심을 저으기 잊고저 하나 이따금 세상 형편을 따라 어리석은 창자의 울분한 피가 복받침 함을 억제할 수가 없어 약간의 책권을 번역하여 놓은 것이 몇가지 있으나 하나도 발간하지 못하매 마음이 더욱 울적함을 이기지 못하다가...

1900년대 초 프아승스에서 발행되는 신문 파리지앙에 소개된 고종황제와 동시대 죄인들을 문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수 년동안 신문 논설 짓기로 저으기 회포를 말하더니 중간에 무슨 사단이 있어 그것또한 폐지하고 있을 때 노일전쟁이 벌어지는지라 비록 이 세상에 나서서 한가지 유조한 일을 이룰만한 경륜이 없으니 이 어찌 남아가 무심히 들어 앉을 때리요.

1894년 11월 17일자 London News에 실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들이 조선에 들어올 당시 개선을 통과하는 모습(왼쪽), 이승만이 감옥에 있던1900년대 초기 고종황제가 덕수궁 준명당에서 조회를 하는 모습.

강개격분한 눈물을 금치 못하여 그 동안에 만들었던 한영사전을 정지하고 양력29일에 이 글을 만들기 시작하니 당초에는 한 장 종이에 장서를 기록하여 그 중에서 몇 장만을 발간하려 하였으나 급기야 시작하고 본즉,  끊을 수 없는 말이 연속하는지라 마지못하여 관계있는 사건을 대강대강 기록할 사이에 사형을 받은 죄수들이 집행을 당한 일도 수차 있었으니…  들고나는 죄수들도 여럿이 있었으며 자연히 소요하고 송구하여 얼마동안 정지하기도 하고 혹 비밀히 쓰느라고 몇번 써서 감추기도 하며 글이 연속치는 못하나 그 강령을 상고하면 맥락이 서로 연락하여 다 독립 (獨立) 두 글자에 주의 할 것이다.

지명(지명)과 인명(인명)을 많이 쓰지 않고 향용 쓰기 쉬운 말로써 길게 늘려 소설 같이 보기 좋게 만듬이요. 전혀 국문으로 기록함은 전국에 많은 인민들이 보기 쉽게 만듬이요. 특별히 백성편을 향하여 많이 의논함은 대한의 장래가 전혀 아래 인민들에게 달림이라.

대저 우리나라 소위 중등이상 사람이나 여간한 문자나 안다는 사람들은 썩고 물이들어 다시 바랄 것이 없으며 또한 이 사람들이 사는 근처도 다 그 기운을 받아 어찌할 수 없이 되었나니 이 말이 듣기에 너무 심한듯하나 역력히 증험하여  보면 허언(虛言)이 아닌 줄을 가히  믿을지라.

오직 내가 깊히 바라는 바는 국중에 더욱 무식하고 천하고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가장 많이 주의하여 스스로 홍기한 마음이 생기어 차차 행하기를 시험하고 남을 또한 인도하여 날로 인심이 변하여 풍속이 고쳐져서 아래로부터 화하며 썩은데서 싹이 나며 죽은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원하노라.

1910년 Los Angeles 대동서관에서 독립정신을 발행한 우문 문양목선생은 1908년 3월 샌프란씨스코에서 장인환 전명운 의거가 발생했을 당시 대동보국회장으로 저격당하기 전 스티븐스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한 독립운동가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자유롭게된 국민들은 일본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감추어 두었던 <독립정신>을 보라는 듯이 펼쳐 자랑하였다. 마침내 이 책을 샌프란씨스코에서 수 명의 한국인 망명객들의 노력으로 삽화까지 넣어져  호화판으로 1,000부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다시 호놀루루에서 한국교포에 의하여 재판되었고, 수차례에 걸쳐서 재출판되었다. <독립정신>은  47장과  <독립필수의 조건>이라는 부록으로 엮어져 있다. 이 책은 영어로 번역은 않되었으며 또한 그 내용이 반세기 전에 이승만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정치사의 견해만으로 일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은 되지 못하였다.

옥중에서 이승만의 배재학당 친구 신흥우(배재학당당 역임)가 읽은 성경책(왼쪽), 당시 청계천에서 다딤이 방맹이 장사의 모습.

그러나 이 책의 논조에서 몇마디 인용해 보는 것도 당시 이승만의 심경(心境)을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개개인의 책임감을 강조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한국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국에 속(屬)해 있으며 또한 온 한국 민의 일부인 것이다. 여러분의 양 어깨에 국가 건설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애국심이 없다면 그 마음은 여러분의 적(敵)인 것이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이 공통의 적과 싸우는것을 주저 한다면 그 마음과 싸우지 않으면 않된다. 우리들의 마음을 지금 곧 두들겨 보자. 그래서 만약 그 마음이 국가의 복리(福利)를 생각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그 것을 곧 없애 버려라 다른사람이 인도해 주는 것을 또는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스스로 솔선해라 만약 여러분이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되지 않을 것이다…. ”

“우리 모두는 힘을 합쳐서 우리나라를 강하고 풍부하고 문명한 나라로 만들자 항상 여러분의 마음 속에 ‘독립’의 뜻을 품고 있으라.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보다도 절망을 내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은 건전한 국가의 열매 맺을 씨앗인 것이다“

한편 이승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서술하였다.

“나는 압박 받는 동지를 위해 잔인한 적과 맞서 싸웠다. 내 생명까지도 그 약세력(弱勢力)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으나 이 같은 죽음은 단순한 사망이 아니고 영생인 것이다. 동포 여 각자 그 책임을 인식하고 그 것을 실행해 주었으면 한다. 결코 수치스러운 행위를 해서는 않된다”

그리고 신개념(新槪念)인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개략적(槪略的)으로 말하면  국가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토의하는 의회(議會)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안에서 국민들이 살아가기 위해 한군데 모은 관리(官吏)라고 하는 것은 그 조직에 관한 일을 하도록 책임을 지고 있다. 여기에서 국민들은 모두 의회에 의원인 것이다. 국민의 원조 없이 관리는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주의하지 않으면 악(惡)이 좀 먹는 것이다.”

이 책은 국외로는 한번도 나간적이 없이 낡고 보수적인 문화가운데서 편견적(偏見的)인 기초교육을 받고 자란 한 청년이 감옥안에서 저술한 것이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실로 자유주의자의 영감(靈感)으로부터 나온 뛰어난 책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필기도구의 사용이 금지되었던 감옥에서 그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고종의 계비 엄비(嚴妃)의 덕이 많았다. 화려했던 이왕조(李王朝) 시대를 잊어버리려고  취미로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었던 엄비는 이승만이 글을 쓰는 신문의 애독자로서 그의 개혁운동에 동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비는 간수장을 잘 알고 있던 터였기에 이승만과 그의 동지들을 잘 돌보아 주도록 부탁했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궁정의 총애 여하에 따라서 관운(官運)이 좌우되는 당시의 정세로 본다면 이 것은 충분이 이해될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권력을 쥐면 영달(榮達)할 수가 있고 대신 조정의 미움을 사면 일조에 몰락을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도 항상 이상한 흐름이 있어 세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반대측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임스 한  chunjiin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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