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승만 일대기
26. 이승만 기독교로의 입문철학적 접근의 신앙으로 서양을 이해한 이승만
제임스 한 | 승인 2016.11.28 05:50

이승만이나 독립협회의 동지들에게 미치는 혜택도 징역을 감형(減刑)해 줄 수는 있어도 석방(釋放)시켜 줄 수 있는 강력한 것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에게는 마음의 해방이 생겼다. 그것은 그가 기독교로 개종(改宗)한 일이었다.

이것은 1904년 정로교목사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의 조력에 의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자기가 개종하기까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1904년 이승만이 옥중 신약성경번역 당시 언더우드 (가운데) 선교사와 게일(왼쪽)선교사 뒤에 길선주 선교사,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옥중에서 읽고 감수한 옥중동지 신흥우와 박용만

가장 기묘(奇妙)하게 생각되는 것은 1900년전에 죽은 사람이 내 영혼을 구해 준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자문(自問)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해주던 이상한 사람들이 이처럼 바보 같은 교리를 믿을 수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들은 무지(無智)한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따라서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만이 교회에 가는 것만 보아도 알 수있다. 위대한 불교의 지식이나 유교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교양있는 학자들은 결코 이와같은 교리에 미혹(迷惑)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아뭏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제서야 어머니에게 배재학당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시고 말했다.

“아가야 (어머니는 내가 열아홉이 될 때까지도 아가라고 부르면서 사랑해 주셨다), 너도 천주광(天主狂)이 되려고 하는구나 ”

“아닙니다. 어머님 그들이 말하는 걸 무조건 믿을 만큼 나는 바보천치가 아닙니다. 이 종교의 신자가 된 학자는 한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

나는 어머님을 안심시켜 드렸다. 이 것을 듣고 어머니는 얼마간 안심을 했으나 어머니의 마음에서 불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곧 서양문명의 영향을 받아 급격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승만(왼쪽)의 초기 옥중 모습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월남 이상재선생, 이승만이 출옥할 무렵인 1904년 아들 승룡과 함께 한성감옥에서 남긴 사진. 이상재선생(왼쪽 첫번째)

기독교국가의 국민들은 통치자의 폭정(暴政)에서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안 젊은 양반의 마음속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이 것은 그 당시 국민들이 얼마만큼 정치적인 압박을 받았는 가를 아는사람이면 다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도 자신에게 말했다. 만약 이와 같은 정치의 원칙을 우리동포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동포들에게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변동은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고 법과 규칙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국민이나 지배계급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속성 (永續性)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않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새벽 예배에 이따금씩 참석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는 구원(救援) 이상의 그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동포애(同胞愛)와 봉사의 복음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나는 이 외국 종교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게 되었고 그리스도는 공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그가 투옥되기 전까지의 정치운동을 하던시기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그의 감정을 정확하게 나타내 주는 이야기이다.

초대 주미 공사관 직원 일행들. 앞줄 왼쪽부터 이상재, 이완용, 박정양(주미 공사), 이하영, 이재연이며, 뒷줄은 수행 원들이다. 이승만을 한성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 여생을 함께한 감옥동기인 월남 이상재 선생의 가솔들.

당시는 그가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 미숙(未熟)했기 때문에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에 대하여 반항 할 것인가에 대한 감정이 강했다. 그는 낡아빠진 전제정치는 타도(打倒)되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전제정치에 대신하는 새로운 것을 만들 책임이 부여되어 있었다면 그는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괴로운 감옥생활은 그를 급격히 성장시켜 주었다. 즉 정치와 인생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신에 대한  신앙과 동지에 대한 신뢰를 얻게된 것은 감옥에서 였다. 토마스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그도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보게된 것이다. 그가 미국 잡지에서 읽었던 정치적 사회적 개혁의 논문도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해석되지 않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신앙 없이는 “모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라는 교리(敎理)에 대하여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이 신앙을 가진 진실한 신자는 자신의 동포들이 비참한 판국에 쳐해져 부정(不正)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생각은 불가피 한 것이라고 보고 깊은 논리로써 자신의 마음을 엄하게 훈련시켰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단순히 그원리에 지적(知的)으로 동의 했다는 것 이상으로 의미를 가졌다. 그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에게 생생한 영감(靈感)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시작한 만민공동회 부터 감옥생황을 함께하여 평생 이승만의 후견이 된 이상재 선생이 1912년 초대 YMCA 총무를 역임한 이승만박사가 미국으로 떠난 후 종로 YMCA에서 윤치호 신흥우등이 세브란스 박사와 함께 한 기념사진.

그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동정이 그의 영혼에 스며들어 자신이 신의 보호 아래에 있고, 그의 생애는 파란 많은 것이나 신의 섭리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엇이던 그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배웠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생각 하기 보다는 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더욱 열렬하게 생각하였다.

이 수용(受容)의 겸손은 그의 성격에 일부분으로 형성되었다. 그가 자신은 언제나 신의 뜻에 따라서 기쁘게 사용되도록 준비된 도구(道具)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그는 절망과 용기를 동시에 느꼈다. 절망은 그 자신의 운명을 이끌지 못했고 또한 평안을 구할 수 없었으나 신의 위대한 목적을 수행(遂行)하기 위해서 봉사하려는 용기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강점은 그에게 마음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이 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사람됨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단점과 부딫쳐 그 것을 개량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떠한 책임이 그에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것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 개종이 옥중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에게 직접적이며 실제적인 성격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감옥안에는 그 외에도 온갖 비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저지를 수 있는 죄는 모두 저질러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른 사람도 있었다. 또 이승만과 마찬 가지로 부패한 정부를 개선하려다 투옥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 기독교에 대해 깊히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만큼 피상적(皮相的)으로 알고 있었다. 이승만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성서의 귀절을 크게 읽었다. 감금된 사람들은 지루한 시간의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도 상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낭독을 즐겨 들었다.

기도(祈禱)가 영교(靈交)의 자연스러운 수단이 되고 하루의 시종(始終)이된 이승만의 후 년의 습관은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영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제임스 한  chunjiinla@gmail.com

<저작권자 © 천지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Chunji-in.inc President : Myung J Lee  |  Publisher : Youngseon Jeon  |  청소년보호책임자 : Myung J Lee
Tel : 213.500.2170 / 562.237.3298  |  E-mail : chunjiinla@gmail.com / jysusa@hamail.net
Copyright © 2018 천지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