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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문재인의 눈물이 연 5·18판도라의 상자-3제 1 장 불붙는 5.18 역사전쟁(2)
김대령 | 승인 2017.08.07 02:20

전세계 여러 국가들 중에서 심지어 국호에서까지 ‘민주팔이’하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남한의 국호 ‘대한민국’에는 ‘민주주의’ 네 글자가 빠져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의 국호는 국시가 민주주의임을 과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한 정권의 논리에서 북한은 민주주의 이상향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국제적으로 ‘민주팔이’하여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대통령이 김대중인데, 김대중이 민주인사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도록 홍보해 준 국제적 조직이 바로 조총련 산하단체인 한민통이며, 한민통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약칭이다. 일본에 본부를 둔 한민통이 말하는 민주회복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파괴이므로 대법원 판결은 한민통과 그 후신인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였다. 광주사태 당시 한민통이 광주사태 주동자들 배후 세력이었으며, 그래서 북한에서는 5월 18일부터 광주인민봉기를 라디오로 생중계하고, 텔레비전으로 실황방송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사진 5. ▲ 1980년 봄에 김대중과 문익환 목사는 물론 윤한봉 등 광주운동권에까지 자금 지원하며 광주사태 사전 준비를 배후 조종하였던 한통련이 최근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배후였음을 보여주는 북한 문건. 이 문건 대로라면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도 북한이 남한의 종북세력에게 내린 지령대로 결정된 것이었다. 지금은 문재인과 공개 밀착하는 한통련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2017년 5월 18일 서한에는 광화문 촛불집회 배후에 한통련 세력이 있었음이 과시되어 있다. The North Korean document indicates who played as the Big Brother behind the illegal, dirty, back-street political maneuvering by which the South Korean Leftist impeached President Park Geun-hye.

김대중은 일제 치하에서 목포상고 시절 전혀 민주주의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없었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그가 처음으로 익힌 민주주의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여운형의 공산당 조직에서 잠시 익힌 인민민주주의, 그리고 육이오 동란 때 인공 치하에서 익힌 인민민주주의였다. 김대중이 1998년 취임 후 한 일이 대북비밀송금과 대북 퍼주기 등으로 그때 망해가던 북한을 기사회생 시켜 핵무기를 개발하게 한 것이었다. 1980년 봄 광주사태 발생 직전에도 남한의 공산당인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및 <민청련> 등 그 방계 종북좌파 운동권 조직들이 고사 상태에 있었을 때 김대중이 기사회생 시켜 주었으며, 그 세력과 손잡고 광주사태를 사전 준비하여 일으킨 것이었다. 김대중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김대중의 세력 키우기였다. 그래서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도 김대중 패거리의 일원이 되면 명함이 ‘민주인사’로 바뀌고, 김대중 집권 즉시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하였다. 요컨대 김대중식 민주화운동이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운동이 아니라, 간첩과 동급인 과격한 종북세력도 합법적으로 정계에 입문할 수 있게 해주는 운동이었다.

앞에 언급한 한겨레 기사에서 한겨레신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전두환의 신군부와 계엄군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을 주장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열흘간 전개한 민중항쟁”이라고 정의하는 바, 이것은 역사 치매환자들이나 할 수 있는 황당한 주장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신군부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신군부는 1990년 들어 처음 생긴 신조어였으며, 광주시민은 1995년 이전에는 신군부라는 용어를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5년 후로 가서 ‘신군부’라는 용어를 주워듣고 그 개념을 들고 다시 15년 전인 1980년으로 돌아와서 항쟁을 한 광주시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둘째로,  “'유신세력 척결'을 주장하며 죽음을 무릅쓰고”는 스스로 1996~97년의 5·18 재판 법리를 무너뜨리는 치매증이요, 자가당착이다. 여기서 ‘유신세력’이란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를 지칭한다. 1996년 채동욱 검사는 광주의 무장시위대는 헌법기관인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 수호세력이므로 헌법기관이라는 법리를 만들어 내었고, 법원이 그 법리를 받아들였기에 민간인들이 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여 총기난사한 행위 등이 정당화되고,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행위 등 시민군의 모든 범죄 행위들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5·18운동의 목표가 ‘유신세력 수호’가 아니라 척결이었다면 5·18역사에 무지한 채동욱 검사가 5·18법리를 180도 거꾸로 만들었던 것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한겨레신문이 잠자코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진 6 ▲ 이 사진에 두가지 명제가 있다. 첫째 명제는 사진 속의 전경복장의 무장폭도들은 시민군이라는 명제이다. 둘째 명제는 이 전경복장의 무장 폭도들은 광주시민들이 아니라는 명제이다. 5월 21일부터 전경복장으로 총을 들고 군용차량을 타고 다녔던 무장단체는 광주에 침투하여 도시게릴라전 임무를 수행하던 인민군들이었다. 그때는 아직 시민군이란 용어가 없었던 때라 다수의 주민들은 사진 속의 무장단체를 군인으로 잘못 인식하였다. 오늘날에도 사진을 자세히 보지 않는 국민은 저 무장단체를 전경으로 혼동하기 십상이다.  저 괴무장단체가 전경 병력이 아니라 시민군들임이 분명해진 오늘날에도 보는 이가 정상적인 눈을 가졌느냐의 여부에 따라 저 자들의 정체가 달라 보인다. 정상적인 눈에는 저 자들이 도저히 광주시민들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광주시민들이 준법정신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전경 옷을 빼앗아 입고 무장 난동을 부릴 만큼 법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시민은 없었다. 그럼에도 채동욱 검사는 광주사태 사진 속의 시민군들의 신원을 전혀 확인해 보지 않은 채로 광주의 무장시위대는 헌법기관이라는 법리를 만들어 내었는데, ‘시위대’라는 용어 역시 이 경우에는 틀린 용어이다. 어떻게 전경 옷 뺏어 입고 총 들고 군용차량 타고 다니는 행위가 시위일 수가 있겠는가?

광주사태는 결코 민중항쟁일 수가 없다. 만약 광주사태가 민중항쟁이라면 유네스코에 등재된 5·18기록물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5·18기록물에는 혁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광주사태를 혁명으로서 언급한 이유는 민중봉기가 김대중의 집권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 3월 신민당 경선에서 김영삼 총재에게 패배하여 제5공화국 대선 후보가 될 수 없게 된 김대중이 바로 전 해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방식의 민중봉기로 집권하여 스스로 통치자가 되겠다며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여 일어난 사건이 5·18 사건이었다. 그때 김대중 세력의 의도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최규하 과도정부 체제가 약하다는 것을 노려 정부를 강제로 전복시키고 선거 없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자는 것이었으므로, 그 성격상 항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1980년의 김대중의 홍위병은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의 모택동의 홍위병과는 사뭇 달랐다. 김대중이 구상한 혁명은 단지 자신의 집권을 위한 혁명이었던 비해, 김대중 지지세력은 김대중을 이용하려는 세력이었다. 그들은 김대중과 한 배를 탔으나 동상이몽이었다. 김대중의 연설 담당 비서였던 박현채의 예만 들어 보아도 그의 진짜 주군은 김대중이 아니라 김일성이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지 않은 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현채는 김대중의 일거일동을 김일성에게 보고했지만 박현채의 활동 중에서 김대중이 모르고 있던 활동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박현채가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전 단계로서의 민족민주화 혁명을 조직한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10월 JTBC사장 손석희가  태블릿PC를 조작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유세 연설문들을 JTBC방송 화면으로 보여주며, 최순실이 연설문 수정을 하였다고 보도한 고의적 공작 정치 보도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최순실은 전혀 자신의 이념을 주입하지 않고, 단지 자기가 아는 박근혜 대통령 말투로 자구 수정만 몇 개 하였다. 이에 비해 김대중의 연설문은 박현채가 단순한 자구 수정이 아니라, 통째로 작성하였다. 박현채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관과 일치하는 민족민주전선 노선으로 광주운동권을 원격조종하여 광주사태를 조직하였다. 이렇듯 광주사태 슬로건이 ‘반미 민족민주’였기 때문에 다수의 국민이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김대령  chunjiin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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