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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문재인의 눈물이 연 5·18판도라의 상자-6가처분된 전두환 회고록 / 전일빌딩 10층 총탄 자국 관련시사
김대령 | 승인 2017.11.27 11:48

4. 가처분된 전두환 회고록

2017년 8월 4일 광주지방법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는 위헌적인 판결을 내렸다. 동 법원은  제21민사부(부장판사 박길성)는 5·18기념재단 등이 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였다 (전원 2017). 박길성 판사는 고향이 전라도 보성이며, 검정고시로 건국대에 진학했던 사법고시 22회 출신이다.

만약 법이 악한 목적으로 악용되면 도대체 그 법은 무엇을 위한 법인가? 지난 37년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세가 이제 곧 90세이다. 5·18 사기꾼들은 지난 37년간 마음껏 악성 유언비어를 지어내 유포할 자유를 누렸다. 그렇다면 전 전 대통령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그 분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나마 표현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박길성 판사가 왜 그 기회마저 강탈하는가?

박길성 판사가 전두환 회고록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이유는 전두환 회고록 제1권 379, 484쪽 등 4곳에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검찰보고서가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경우 1995년 검찰보고서는 법적 증거물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검찰보고서였음에도 헬기 기총소사 유언비어에 관한 한 그것은 유언비어였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게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검찰보고서는 전두환 회고록에서만 인용되는 것이 아니라, 본서에서도 인용된다. 만약 악성 유언비어를 지어내서 퍼뜨린 쪽에서 검찰보고서를 뒤집으려면 유언비어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아직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검찰보고서를 뒤집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도 아닌데, 검찰보고서 몇 줄 혹은 두 세 단락이 좀 인용되었다고 해서 책 출판과 배포를 금지시키는가?

박길성 판사가 전두환 회고록 출판과 배포를 금지한 또 한 가지 이윤는  회고록 제1권 470쪽에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경 도청광장 분수대  앞에서 시위대의 장갑차에 치어 계엄군이 사망한 사실에 대한 5·18 기록이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5·18 기록물 기록을 인용하지 못하도록 광주단체들과 광주법원이 탄압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1980년 5월 21일 12시 58분경 시민군 장갑차에 권용운 상병이 깔려 즉사한 사실은 1995년 검찰보고서에도 기록되어 있고, 김영택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와 한국일보 기자 등 여러 기자들이 현장목격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그 사실을 김영택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극히 순간적으로 전개된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숨돌릴 틈도 없이 눈 깜짝하는 사이인 낮 12시 50분, 아시아자동차에서 빼앗은 앞이 뾰족한 장갑차 1대가 전속력으로 질주해 들어왔다. 수협 전남지부 앞에 서 있던 공수부대원들은 급히 피했지만 미처 물러나지 못한 2명이 이 장갑차에 치이는 바람에 권용운 상병은 즉사하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김영택 1996, 109-110).

시민군 장갑차에 계엄군이 깔려 즉사한 사실은 취재기자들뿐만 아니라, 무수한 시민군이 현장 목격하고 증언하여 5·18기록물로서 보존되어 있는 사건이다. 이 기록물들은 연구 목적으로 이미 전국민에게 공개되어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임금도 사초 (史草)를 고칠 수 없었다.. 누가 광주의 일개 판사에게 5·18기록물을 없앨 권한을 주었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었는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5·18 사료를 없애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같은 날 한겨레신문은 광주지법이 전두환 회고록 출판과 배포, 발행·인쇄·복제·판매·광고 등을 금지한 이유는 전두환 회고록 1권 26∼27쪽에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 (…)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되었다”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한다 (안관옥 2017).

요컨대, 전두환이 회고록에서 자신이 발포명령자라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과 배포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5·18 사기꾼들이 지어낸 유언비어와 달리 전두환이 발포명령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1996년의 5·18 재판 때 이미 밝혀졌다.  채동욱 검사가 전두환을 처벌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 광주 무장시민군은 헌법기관이라는 황당한 법리를 만들어 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군의 시민군 무기 회수작전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추호라도 관여하였다는 증거가 없어서 전두환을 발포명령자로 엮여 처벌하지는 못했다.

만약 발포명령자가 누군지 밝혀졌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새삼스럽게 발포명령자를 찾겠다며 재조사하겠는가? 금년에 재조사가 실시되면 시민군측 발포만 있었고, 계엄군 발포는 없었다는 사실만 드러날 뿐이다. 5·18의 총성이 시민군 총성이었음을 몰랐던 1996년의 5·18 재판 때도 전두환이 시민군 무기회수 작전에 관여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어서 최환 등 5·18 정치검사들은 전두환을 광주사태와는 무관한 포괄적 뇌물죄로 기소하였다.

금년에 국회탄핵소추안에 명시된 탄핵 사유들은 모두 허구와 사기였음이 탄로났을 때 박영수 특검팀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들은 국회탄핵소추안에 없는 엉뚱한 블랙리스트 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엮으려는 꼼수를 썼다. 바로 그런 것이 1996년이 5·18 재판 상황이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시민군 무기회수 작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최환 등 5·18 정치검사들은 광주사태가 끝난 지 여러 해 지난 후에 해당되는 주제의 소설을 써서 전두환을 엮었다. 5·18 정치검사들의 소설작품 제목은 포괄적 뇌물죄였고, 국민이 각 방송사와 신문사에 낸 수재민 돕기 성금과 어린이 심장재단 성금 및 평화의 댐 성금 등을 포괄적뇌물죄로 간주하고 몇 배의 추징금을 물렸을 뿐만 아니라, 포괄적뇌물죄를 처벌의 근거로 삼았다.

5·18측은 입증 불가능한 유언비어, 즉 전두환이 발포명령자라는 허위주장을 이제는 삼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5·18측은 입증되지 않은 허위주장일 뿐인데 그 허위주장을 근거로 일국의 전직 대통령 회고록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할 수 있는가?

5. 전일빌딩 10층 총탄 자국 관련시사

지난 2016년 12월 13일에 뉴시스 광주주재 배동민 기자와 신대희 기자는 “'5·18현장' 전일빌딩 총탄…헬기사격 가능성" 제하의 기사에서 “광주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최소 10층 건물 높이에서 날고 있는 헬기에서 쏜 것으로 보인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보도는 아무래도 그 보도 의도가 의심스럽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분명히 미확정된 추정을 하나의 의견으로서 말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의견은 결코 과학적 분석 결과가 아니었다. 우리는 입증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할 때 “~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미확정 상태를 가리켜 어떻게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할 수 있는가?

공식 발표가 아닌 뉴시스 광주주재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김동환 국과수 총기안전실장이 그런 의견을 말할 유일한 근거는  "주변 건물을 볼 때 헬기에서 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 건물을 볼 때 그 총탄 자국은 시민군이 쏜 것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5월 21일에는 시민군 저격수들이 주변 건물 옥상에 배치되어 있었고, 5월 27일 새벽에는 도청 옥상에 설치된 시민군 기관총이 전일빌딩 방향으로 맹사격을 했었다.

총탄의 종류에 대하여 김동환 실장은 “탄흔의 각도나 형태를 분석한 결과 M16 소총의 5.56㎜ 총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비무장 헬기에서 정면으로 M16 소총 사격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헬기는 언제나 건물 상공에서 비행하지, 건물 중간 위치에서 건물 정면을 향해 비행하는 헬기는 없으며, 더구나 시민군이 헬기를 향해 사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할 비무장 헬기는 없으며, 또 그렇게 하더라도 비무장 헬기가 전방을 향해 M16 소총 사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2016년 연말에  광주시 전일빌딩 10층 한 사무실의 기둥과 천장과 벽에서 총탄 자국과 흡사한 의문의 자국 142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2017년 7월 30일 현재까지도 아무런 총알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2월 7일자 동아일보가 이렇게 보도할 뿐이었다: “전일빌딩 10층 총탄 자국은 10층 공실(67m²) 중앙기둥에 집중됐다. 총탄 자국은 기둥 56개, 바닥 56개, 천장 널빤지 28개, 창틀 2개 등 총 142개다. 나머지 총탄 자국은 천장 널빤지와 천장 옆면 길이 15∼20cm의 나무판에 남아 있다.”

5·18측은 헬기에서 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헬기는 전일빌딩 가까이로 온 적도 없고, 언제나 헬기는 건물보다 훨씬 높은 상공에 떠있는데, 어떻게 헬기에서 쏜 총탄이 헬기보다 훨씬 아래 건물 사무실 천장을 밑에서부터 위로 관통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5·18 최초 발포 명령자 반드시 찾는다" 제하의 나현호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광주광역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총탄 발굴을 의뢰했다:

[나의갑 / 5·18 진실규명 지원단 자문관 : 그동안 우리가 많이 주장해왔던, 5·18은 광주 시민에 대한 학살이었다는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얼마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등 두 곳의 탄흔이 헬리콥터 화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공식 보고서를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광주광역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아예 총탄 발굴을 의뢰했습니다 (YTN 2017년 2월 7일자).

한겨레신문 광주주재 정대하 기자는 2월 16일에도 여전히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태임을 그의 2월 16일자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한다: “옛 전일빌딩 탄흔은 당시 군이 헬기에서 사격을 했을 가능성을 밝힌 최초의 정부 보고서지만,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대하 2017).

2017년 3얼 2일 KBS광주방송은 “‘5.18 헬기사격' * ‘호남KTX 2단계' 결의안 본회의 통과” 라는 제목의 뉴스에서 광주사태 당시 계엄군의 헬기 총격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고 방송하였다.

특히 국민의당 기관지 최근 기사인 3월 20일자 기사는 헬기 총격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의당의 노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문재인 후보가 오늘 광주에서 5.18 발포명령자 등 진상은 철저하게 규명될 것이고, 진실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어떤 시도도 원천 금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나마 5.18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약속한 것은 다행이다. 문재인 후보가 오늘 광주시민들에게 한 약속이 어제 TV토론에서 전두환 표창 논란을 덮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길 바란다.

국민의당은 지난 2월 ‘5.18 계엄군의 헬기 총격 의혹 진상규명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고, 헬기 총격의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규명 특별법을 김동철 의원이 대표발의 예정인 등 37년간 묻혀 있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주도해 왔다 (국민의당 3월 20일자).

전일빌딩 10층의 탄흔 중에는 5월 21일 시민군이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옥상에서 전일빌딩 방향으로 사격하였을 때 생긴 듯한 탄흔도 있어 보인다. 박준배 기자는 탄흔 중에는 "천장텍스 부분을 보면 탄도가 수평을 이루는 탄흔 자국이” 있음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김동환 총기안전실장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보도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박남규 법공학부장과 김동환 총기안전실장 등 4명은 이날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의 직접 증거가 될 실제 총탄과 추가 탄흔을 찾기 위한 조사를 벌였다.

본격 조사에 앞서 김동환 총기안전실장은 "작년에 전일빌딩 내부의 탄흔을 조사하며 천장 텍스 위쪽 부분에 탄흔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추가 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감식에서 발견된 천장 텍스부분 탄흔 자국을 언급한 것으로, 전일빌딩 10층 천장 텍스에선 수평으로 쏜 총알이 스치며 생긴 듯한 '찢긴'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김 실장은 이어 "천장텍스 부분을 보면 탄도가 수평을 이루는 탄흔 자국이 있는데 몇 개 정도는 (천장) 안쪽으로 진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조사에서 온전한 탄환이 나오거나 파편이라도 나온다면 총탄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어 기대가 큰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헬기사격 입증 가능성과 관련해선 "지난해 조사 감정서에도 밝혔지만 5·18 당시에 10층 규모인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주변에 없었고 많은 탄흔이 위에서 밑으로 쏜 것으로 보인다"며 "탄환이 나오고 그 종류가 밝혀진다면 헬기에서의 사격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준배 2017).

위의 김실장의 말 중에서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주변에 없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전남의대 부속병원이 12층 건물로서 전일빌딩보다 높았으며, 시민군이 5월 21일 전남의대 부속병원에서 전일빌딩 방향으로 기관총 사격을 하였을 때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계엄군은 광주사태 기간 단 한번도 기관총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시민군은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옥상과 전남도청 3층 옥상 위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전일빌딩 방향으로 사격하였으므로 만약 기관총 탄환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민군 기관총 탄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일빌딩 10층 어딘가에 탄환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5·18측의 기대와 김동환 국과수 총기안전실장의 추측에 가까운 가설일 뿐 실제로는 여태껏 단 한 개의 실탄도 발견되지 않은 사실을 노컷뉴스 김형로 기자는 “5·18 당시 헬기 기관총 사격 단서··탄환 발굴 못해” 제하의 2017년 3월 30일자 기사에서 다음과같이 보도한다: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관총 사격 의혹을 규명할 광주 전일빌딩에서의 총탄 발굴이 실패해 헬기 기총 소사 의혹 규명이 역사의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28일부터 1박 2일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5·18 때 계엄군 헬기에서 무차별적으로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이 무더기 발견된 전일빌딩 10층에서 "총탄" 발굴 작업을 본격적으로 벌였다.

이번 총탄 추가 발굴 조사는 지난해 조사 때 원형 훼손 문제로 하지 못한 전일빌딩의 10층 옛 전일 방송실 천장 부위의 천장 텍스 훼손 없이 형광등 기구 16개를 해체한 뒤 그 공간을 이용해 국과수 직원들이 육안 조사를 통해 총탄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국과수는 29일 오후 늦게까지 총탄 발굴 조사를 벌였으나 총탄은 물론 총탄 파편조차 발굴하지 못해 애초 30일까지 예정됐던 발굴조사를 하루 앞당겨 조기 마무리했다 (김형로 2017). 

사진 9 ▲ 금년 2017년 4월 3일자 연합뉴스 기사 사진에서 기관총을 장착한 시민군 차를 타고 있는 시민군은 북한군들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도청광장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광주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광주시가 저 시민군 기관총 사수가 광주시민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곧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탄흔은 광주시민이 쏜 기관총 탄흔으로 귀결된다. The photo of Yonhap News demonstrates one of the Gwangju militia vehicles equipped with a machine gun.

KBS 양창희 기자는 4월 중순에 추가 총탄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5·18측 주장을 “‘5·18 헬기 사격’ 입증 총탄 흔적 또 발견” 제하의 2017년 4월 19일자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5.18 당시 계엄군 헬기의 기관총 사격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전일빌딩에서 총탄 흔적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오늘 광주광역시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탄흔 감식 종합 설명회를 열고, 지난달 벌인 추가 감식에서 전일빌딩 10층 천장과 외벽 등에서 탄흔 60곳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네 차례의 국과수 정밀 감식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은 모두 245곳으로 늘었습니다.

탄흔은 10층 천장과 기둥 등에서 백77곳, 10층 외벽에서 16곳, 그 밖의 건물 외벽에서 52곳이 발견됐습니다.
10층의 탄흔들은 대부분 창문 주변 천장과 기둥 등에 부채꼴 모양으로 분포돼 있었습니다.
국과수는 이를 토대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가 10층 건물과 비슷한 높이로 비행하면서 기관총 등을 난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국과수는 10층 내부에 탄알이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색을 벌였지만 발견하지 못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광주광역시와 5.18기념재단 등은 국과수 감식 결과를 토대로 헬기 사격에 대한 진상 규명을 정부와 국회 등에 요구할 계획입니다 (양창희 2017).

이런 주장을 하는 5·18기념재단 이사들과 광주시 시장은 『5·18특파원 리포트』는 전혀 읽어보지 않은 것인가? 기관단총은 광주 무장시민들의 주요 무기였다. 만약 지금 현재 5·18측에서 제시하는 논란이 광주사태 때 계엄군과 시민군 중 어느 편에서 기관단총을 사용하였느냐에 관한 것이라면 5·18특파원들과 취재기자들이 본 것은 무장시위대의 기관단총뿐이었다. 예를 들어, 조성호 조선일보 기자는 『5·18특파원 리포트』 199쪽에서 광주 금남로의 무장시위대는 이미 5월 21일 오후 2시부터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평화시위하는데 기관단총이 왜 필요한가? 세상에 기관단총 쏘면서 하는 평화시위도 있는가? 심지어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 중에도 도시에서는 기관단총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시민들이 광주시에서 기관단총 난사를 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광주MBC 윤근수 기자는 “5.18 기록관 12일부터 '발포' 전시” 제하의 2017년 5월 12일자 기사에서 “탄흔이 남아 있는 광주은행 유리창”이 5.18기록관에 전시되고 있음을 이렇게 보도한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개관 2주년을 기념해 
발포와 관련된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80년 당시
발포와 관련된 기록물뿐만 아니라
전남도청 옛 현판과
탄흔이 남아 있는 광주은행 유리창,
그리고 전일빌딩 등
관련 공간들을 재현해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윤근수 2017).

그런데 유네스코에 등재된 518기록물에는 그 탄흔들이 모두 시민군이 쏜 총탄 탄흔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도 이런 전시회를 하는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시민군 김정균은 광주은행 유리창 탄흔은 시민군들의 발포로 인한 것임을 이렇게 증언한다:

또 한 며칠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시민군들이 광주은행 본점 건물을 향해 총을 쏜 적이 있다. 그때는 대부분의 사무실이 커튼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은행 6, 7층 중 한 사무실의 창문에 커튼이 약간 젖혀진 것을 발견한 시민군들이 '계엄군이 저 건물에 있다'면서 총을 쏜 것이다 (김정균 1989).

이렇듯 5.18 기록물에는 분명히 시민군 발포에 의한 탄흔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시회에서는 누구의 발포에 의한 탄흔이라고 거짓말하려 하는 것인가? 관람객들에게 애매하고 억울하신 분들에게 계속 누명을 씌우는 거짓말을 하고자 함인가?

사진 10 ▲ 시민군들이 광주은행 본점 건물을 향해 총기난사한 현장에 있었던 시민군들은 광주은행 유리창에 남아 있는 탄흔은 시민군 총탄 탄흔이라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5.18기록관에서 그 유리창 탄흔을 재현하여 전시하고 있는 이유는 엉뚱한 이에게 또 누명을 씌우는 허위사실 유포를 하고자 함인가? 그러나 설사 엉뚱한 인물에 악의적 누명을 씌우는 것이 광주단체들에 이익이 된다고 할지라도 발포 가해자에 대한 사실 왜곡은 5.18 왜곡이다.

5·18국가유공자 김기광도 전일빌딩 10층 총탄 탄흔은 군인들이 쏘아 생긴 것이 아니라, 5·18국가유공자들이 쏜 총탄 탄흔이었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언젠가 궐기대회를 하고 있을 때 웬 사람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봤다. 누군가 '저기 군인 같다'고 하니까 그 많던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그때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옥상에 내려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긴장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주변에 있다가 전일빌딩 옥상으로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군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는 잘 보기 위해 올라갔다고 했다 (김기광 1989).

사진 11 ▲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기록물에서 시민군들은 전일빌딩 10층에 총탄 탄흔이 생긴 이유는 5·18국가유공자들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궐기대회 구경하는 광주시민을 사살할 목적으로 총기난사하였을 때 생긴 것이라고 한결같이 증언한다.

지금 광주 단체들은 옛 전남도청 천장의 총탄자국을 보존하려고 하지만 시민군 양홍범은 자신은 총을 쏠 줄 모르는데도 M16 소총을 지급받았으며, 도청 지하실 천장 탄흔은 자기가 쏜 M16 총탄 탄흔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 젊은이가 내게, "이 총은 무슨 총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처음 김영복 씨로부터 총 쏘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문 앞의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M16 총을 세워놓은 뒤 탄창 끼우는 법, 안전 자물쇠 다루는 법, 노리쇠 사용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총을 직접 쏴버렸다. 다행히 M16 총알은 천정에 박혀 아무 사고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친절한 나머지 방아쇠 당기는 법까지 가르쳐 준 격이었다 (양홍범 1989).  

   

김대령  chunjiin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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